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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C

삶에 대한 생각

by 게임혼 2011. 1. 22.
꿈을 꾸었다,
내 몸의 일부들이 각자의 의지를 가지고 나를 벗어나기 위해 움직였다.
나는 그들의 집합이었다. 그들에게 아직은 여행을 떠날 때가 아니라며 말렸다.

나는 무엇일까? 나라는 존재 이전에 삶의 시작은 존재하는 것일까? RNA를 조합하여 바이러스를
만든 과학자가 존재하는 현재에서 생명에 대한 물음은 어떤 요소가 시작인지에 대한 물음으로
변해버렸다.

시작은 무엇인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존재한다는 것의 반대인 것일까?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시작에서 어떻게 존재라는 것이 나타나게 된 것일까? 아니면 태초라는 것은 존재라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있는 것인가?

나는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 영원히 내가 원하는 길을 반복하는 것으로 존재의 가치가
만들어진다면 이 고리를 끊는 것은 아마 질서에 대한 일탈이자 반역이라고 보인다.

나는 죽음 이후에 존재에 대한 확신을 가졌다. 내가 현재 존재하는 것처럼 죽은 뒤의 나도 존재하게 된다.
그러나 나는 왜 죽은 뒤에 과거로 돌아가는 길을 선택하지 않았을까?

현재는 나는 어떤 이유로 현재의 기억만 가지고 있을까?

한 집단이 존재하면 그 집단의 우두머리에 의하여 집단은 움직이고 생명을 가지게 된다. 나는 나의
우두머리일까? 아니면 집단일까? 결국 나는 그 집단으로서의 존재가 되는 것일까?
다사고의지를 가진 존재들의 집합에서 나는 만들어진 것일지도 모른다.

결국 다사고의지의 존재들도 마찬가지 과정을 거친 것일테고 결국 그 시작으로의 물음을 던지면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부분에 도달하게 된다.

나의 밑바탕은 공허해졌다.

그리고 그 의문이 짙어지면서 현재에 대한 절대적인 절망이 나를 잠들지 못하게 하고 있다.
이제 절망에 도전하고자 한다. 아니 절대적인 절망을 받아들이려 한다.
그 절망은 삶의 일부이고 나는 삶에 대한 의문을 계속 가지게 되었다.

끝으로 절망을 받아들이며 한가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존재하게 되었다면 나의 존재성은 우주와 같이 끝없이 확장을 위해 나아가게 된다.
바이러스가 끝없이 자기복제를 통해 존재성을 확인하는 것과 같이 나는 나의 의지를 끝없이 확장하게
되는 것이다. 존재하기 때문에 존재하지 않을 수 없는 딜레마에 빠진 것이다.

시작이 아무것도 없다 였다면 아무것도 없다 자체가 존재의 대칭에서 양자성을 띄게 해주는 동력이 된다.
존재하고 존재하지 않고 이 불확실성이 모든 질서의 기준이 아닐까...오늘도 고민으로 인해 많은 생각을
하고 결론을 내려본다.

현재의 나는 시작이다.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는 끝없이 확장해 나갈 것이다. 그것이 나의
운명이자 존재하는 자들의 운명이다. 한순간의 수축으로 리셋되는지 궁금할까? 영겁에 가까운 시간을
존재하게 되면 고통에 빠지게 될 것이다. 나의 지성은 아직 그런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늘 시작할 수 있도록 존재하기 위해 나를 버리고 또 다른 내가되는
것인데 죽음은 저 세상으로 가는 것이고 삶은 이어지게 된다.

한번 존재했다면 이 존재성을 버리지 못한다고 보인다.

나는 존재하여 삶을 살아가고 잠을 자면서 존재를 버린다. 결국 죽음이라 현재의 하드웨어를 버리고 새로운
형태의 하드웨어로 갈아타는 과정인 것이다. 혼자가 아니라 모두가 그런 과정을 거치게 되니까 외롭지 않을
것이다.

더 나아가면 나라는 존재가 다른 존재들의 집합인 것처럼 우리는 또 다른 나라는 존재의 집합이니까.

삶을 계속되고 아무리 죽어도 삶은 계속된다. 잠깐 잠들었다 깨어나는 것과 같이. 존재하는 것은
그 존재의 탈을 벗지 못하고 끝없이 나아가게 된다. 우주와 같이. 시간과 같이 너무도 인지하기 어려운
부분이라 현재는 이해할 수 없지만 삶을 이어가며 나는 이 것을 이해하게 되리라 본다.

삶은 확장하고 우리는 계속 살아간다.